붉은 영기가 감도는 하이델베르그(Heidelberg)성터에서
마인(Main) 운하(canal)를 관장하는 갑문(Locks)노조의 파업으로 보름스(Worms)에서 육로로 중세의 고궁인 하이델버그(Heidelberg)를 둘러볼수 있었다.
주변에는 붉은 사암(沙岩)이 풍부한덕에 온도시가 마치 유타주의 Zion canyon 에 온듯 붉은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성은 비록 몇백년의 풍상과 여러차례의 전쟁등으로 이곳 저곳이 부셔져 옛영화는 역사속에서만 살아있었지만 ,온 도시와 강을 굽어보는 높은 산성이면서 궁궐로서의 위용은 여행객들의 감탄을 받을만 하였다.
우리는 이폐허에서 감탄도 하고 역사적 감상에도 젖어보기도 하였다.
아무리 해자를 깊이파고 두터운 성벽을 쌓아놓고,적의 동정을 살피던 높은 망루는 관광객들의 사진배경외에는 쓸모가 없어졌다.
하지만 그안에 들어서면 뭔지모를 역사속에 빠져드는듯 하는 전률도 함께하였다.
여러차례의 십자군전쟁, 제1차세계대전 그리고 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부서진 성채들은 인생무상을 말해 주는듯 하였다.지금은 이곳주민들을 위해 부서진 성채를 배경으로 음악회나 오페라등이 열리어 쓸쓸함을 달래 주는듯 하였다.
독일인들은 역사이야기가 나오면 상당히 조심하고 무언으로 대답하는듯 하였다.
출생률 저하로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터키등 무슬렘국가에서 밀려드는 저임금 이민세력들과 roma로 일클어지는 집시들의 유입으로 인해 ,국가정체성이 혼돈해지면서 발호하기 시작한 Neo Nazi들은 이틈을 비집고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듯 하였다.
아무리 튼튼하게 세워진 성들도 풍상에 변해가는데 ,국가를 지탱할 종교와 철학은 태초의 혼돈(Chaos)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표류 하는듯 하였다.
한때 모든 사회생활의 중심이었던 교회는 화강암에 끼인 검은때를 독한 산성표백제로 벗기느라 장막들을 친것처럼 형식만 남아 칩거하는듯 하였다.
특히 이곳은 히틀러가 독일의 대표 작곡가라고 치켜세운 바그너(Richard Wagner),푸른 다뉴브강으로 유명한 스트라우스(Johann Strauss)등 유명한 음악가뿐 아니라,치매연구로 유명한 알자이머(Alzheimer)박사,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토마스만(Thomas Mann)등 저명인사들이 태어난 곳이라고 하여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들어내놓고 말은 안해도 이곳이 유럽의 명당자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듯하였다. 좋은 지세가 영웅을 낳는가 아니면 인물이 좋은 지세를 만드는것일까?
부서진 성곽에서 붉은 기와로 덮인 도시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젖어보았다.
내가 지금 여행을 하는건가?
관광을 하는걸까?
아무렴 어떠하겠는가
보여지는대로 느끼는대로 라인강과 함께 하면 그만인것을 …
문득 한국에도 5천년의 가난을 벗어나 선진국 반열에의 초석을 닦은
박정희 대통령의 번듯한 기념관이 있으면 역사관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역사란 공(功)과 과(過) 를 있는그대로 보여주는 것인데….
아직도 개발독재의 상흔이 아물지 않아서인가 남북동서의 갈등으로 응어리진 매듭들이 풀어질날을 기대해본다.
15년전에 한번가봤다가 너무나 아름다워 홀딱빠져버렷던 Heidelberg , 다시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선배님 건강하세요 !!